카자흐스탄 독립 27주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국가 성장동력 멈추지 않아"

2050 국가국민대계획, 2025년까지 미래향한 전략적 계획 목표달성

김은해 | 기사입력 2018/12/04 [18:05]

카자흐스탄 독립 27주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국가 성장동력 멈추지 않아"

2050 국가국민대계획, 2025년까지 미래향한 전략적 계획 목표달성

김은해 | 입력 : 2018/12/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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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b방송=김은해 기자]중앙아시아의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공화국은 오는 12월 16일 독립 27주년을 맞이한다. 

 

독립이 후 지금까지 신생국으로서 뛰어난 지도력과 국민 단합의 힘을 보여준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누루술탄(Nursultan Nazarbayev)" 대통령의족적과 그 과정을 조명해 본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지난 페레스트로이카 (perestroika)시대인 80 년대 말, 소비에트 방식의 국가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성과에 대한 논의가 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또 다른 형태로 변형 되었으며 그것은 바로 정부의 대통령제였다.

 

지난 1991년 12 월 1일은 독립 카자흐스탄에서 대통령직 설립이 시작된 날로 간주된다. 

 

카가흐스탄은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하였고 독립과 함께 주권을 가진 공화국에서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가 개최 되었으며 당시 현 대통령인 누루술탄 나자르바예프는 98.7 %의 지지율을 얻었다. 

 

그리고 10 일 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SSR을 카자흐스탄 공화국으로 개명하는 법에 서명했고 12월 16일, 최고위원회는 독립을 선언했다.

 

2012년부터 카자흐스탄은 매년 첫 번째 대통령의 날을 제정하고 기념했다. 이것은 전체 국가의 연대기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에 대한 헌사 및 추억이었다. 

 

카자흐스탄은 국가의 형성과 주권 달성이 이루어진 날에 일어난 사건으로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투표율이 거의 100 %에 이르는 동안, 자신감을 갖고 강력하고 번영하는 국가를 위해 책임 있고 결정적인 선택을 한 독립적 카자흐스탄의 궁극적 목표를 설정, 성공적인 행동에 돌입하게 된다.

 

카자흐스탄에서 대통령제를 설립 한 것은 시대적 정신에 부응하는 것으로 새로운 시장 경제를 건설 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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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최고위원회는 현대의 양원제 의회로 변모했고 후에는 카자흐스탄 인민 회의 (Assembly of the People)와 공화국을 위한 중요하고 많은 또 다른 조직을 완성했다. 이같이 국가는 새로운 관리 시스템으로 전환하였으며 이 시스템은 오늘날까지도 효과적이며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하기 위해서는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특히 대통령제 정부 형태로의 전환으로서 이 단계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구 소련과 카자흐스탄이 전환되는 교차점에 있었던 상황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90년대 초, 고르바초프가 만들어 낸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가 그 당시에는 활발히 진행되었지만 모든 것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빵, 우유, 설탕, 버터 등을 기다리는 긴 대기열에 서 있어야만 했다 또한, 수백만 명은 무엇을 기대해야할지 몰랐다. 

 

이같이 암울한 시기를 보내기 직전인 1990년 3월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장악했고 페레스트로이카 시대를 낳았다. 

 

당시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나자르바예프라는 첫 비서가 새로운 대통령 지위로 뽑혔다. 더욱이, 초기 단계에서 전체주의와 중부 및 소련 대의원들의 권한 없는 조건 하에서 조차도 새 대통령의 권한은 거의 공식적으로 제한적이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역사적으로 유일한 행보로는 지난 1990 년 4 월 대법원장으로 대통령직에 선출 된 임시 대표가 대통령 체제 제정을 강화하고 국가를 더 큰 혼란과 더 큰 부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총선을 치르게 된다.

 

실제로 4 년의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침착하게 일할 수 있지만 선견지명과 지혜를 겸비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을 선언하고 전체 국민 앞에서 대체 선거에 나서게된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12월 1일에 첫 번째 대통령의 날 축하일로 제정하였고 그 날부터 국가 원수가 가장 정통성을 띠고 얼굴 없는 대리인이 아닌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으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그 후에도 카자흐스탄에서 대통령제를 구성하는 과정은 수년간 지속되었다. 

 

1995년 헌법의 채택과 함께 법정 정식화가 이루어졌고 93년 대 말, 최고위원회의 자체 해산 이후 대통령령의 정부가 정치적 현실이 되었다. 이 순간, 구 소련 시대에 선출 된 인민 대표부의 권력이 끝난 것이다.

 

이같이 처음으로 국가 대통령으로 선출 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의 지위를 받았고 당연한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그는 지난 1991년 12월 16일 카자흐스탄의 독립 공화국인 국가를 창립했다. 

 

카자흐스탄은 사회, 경제 등이 발전돼 가며  주변 국가와의 국경에 의해 협약을 이끌어낸  그의 노력 덕분에, 오늘의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같은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독립과 함께 대통령에 선출되어 국가의 대 변혁을 이끌어 왔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오는 12월 16일에 독립 27주년을 맞이하는 동안 주택건설. 사회노동분야. 국민고용 수준증진. 이민정책. 보건. 교육 그리고 문화 분야 및 스포츠 분야에 카자흐스탄의 성장 동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국가 전략과 프로그램, “카자흐스탄 2050 국민대계획”인 5대 개혁을 실행하기 위한 100가지 구체적 방안인 “누를르 졸”, “3대 현대화”, "루하니 좐그루“를 2025년 까지 카자흐스탄 발전 전략계획 내에서 카자흐스탄 국민 삶의 다양한 분야를 대규모로 현대화 하기위해 미래를 향해 지금도 힘차게 달려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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